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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교육편     

앞장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알지 못하거나 혹은 무시하였던 역사적 사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우리의 역사가 왜곡되어서 외국에 비쳐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왜 일어나고 있는가를 따져 보기도 하였다.
이제 우리는 잘못된 역사기술을 고쳐가야 한다.
우리 역사교과서는 우리의 역사인식이 바뀌기만 하여도 쉽게 바꿀 수가 있다. 그러나 외국에서도 올바른 역사기술을 하도록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들이 지금까지 배워왔던 것을 바꾸는 것이 어찌 쉽겠는가? 그리고 이미 발간된 그러니까 잘못되게 기술된 역사책을 폐기하고, 올바르게 기술된 책으로 바꾸도록 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이 어려운 일을 하는 것은, 왜곡된 역사기술을 수정토록 하는 전담기구를 만들어 여기에 맡긴다고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시민단체들이 나서고, 아니 모든 국민이 나선다 해도 그렇게 녹녹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쉽게 고치는 방법이 있다. 우리가 힘이 있는 나라가 되는 것이다.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에 드는 경제대국이 되면 되는 것이다. 일본이 가진 문화에 무슨 그렇게 돋보일만한 전통이 있는가. 그런데도 서구인들은 일본의 문화가 동양문화의 중심인양 호들갑을 떨고 있다. 이것은 단지 일본이 세계 제 2의 경제대국이기 때문이다.
만약에 우리가 지금의 일본이 차지하고 있는 자리에 올라설 수만 있다면, 외국인들은 우리가 아주 사소하게 여기는 것도 대단한 것처럼 떠벌릴 것이다. 이렇게 될 때도 어찌 우리의 주장이 먹히지 않겠는가?
내가 왜 교육편의 들어가는 글에 역사왜곡과 경제대국이 되자고 엉뚱한 소릴 하느냐고 투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꼭 해야 하겠다.
「교육은 백년대계」라 한다. 이것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 듯이, 「지금 당장 쓸 사람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백년 후에 쓸 사람도 지금부터 준비하여 길러 놓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일 것이다.
이 나라를 지탱하는 것은 이 나라가 갖고 있는 땅 덩어리의 크기도, 지하자원도, 그리고 자연환경으로부터 오는 산물도 아니다. 이것은 바로 이 나라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우리 국민 모두이며, 또 이들이 가진 능력이 모아진 힘일 뿐이다.
이런 소중한 보배를 기르는 교육에 우리의 모든 희망을 걸 수밖에 없다. 이 교육이 잘 되어 우리 국민 모두가 세계의 어느 누구에도 뒤지지 않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어찌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수 있는 경제대국이 될 수 없으며, 또 우리의 주장을 들어 달라고 애걸복걸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제 우리는 지금 당장을 넘어 백년 후에 필요한 사람을 기를 수 있는 교육을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겠으나, 나는 앞으로 천년 후에도 필요한 사람을 기르는 교육을 생각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고 말하고 싶다.
이 민족은 하나의 왕조가 세워지면 적어도 오백 년, 천년을 이어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민주체제가 천년 만년 이어가도록 우리가 지금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
아니 세계가 너무나 빨리 바뀌어 일년 후의 일도 모르는 판에, 앞으로 올 천년을 어떻게 준비를 하느냐고 되묻는 사람도 있겠으나 이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앞으로 필요로 하는 인재들을 길러 내는데 있어 우리의 교육현실에서 문제가 되는 잘못된 것을 모두 걸러내고, 잘 될 수 있는 제도만을 갖추어 놓는다면 우리의 후세들은 그때그때 필요로 하는 인재들을 길러내기 위해 제도와 교육내용을 계속하여 수정해 갈 것이기 때문이다.

1. 10년 대계
교육은 백년대계란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육인적자원부장관은 재임 1년도 안되어 바뀌면서도, 무엇인가 큰 일을 벌려 놓지 않으면 아니 되는 듯이 일을 저질러 놓기에 바쁘다. 그러니 나라가 걱정될 수밖에 없다.
이런 걱정을 잘 알고 있는 듯이, 한국개발연구원 주도 하에 국책·민간 연구기관들이 공동으로 작성한 「2011비전과 과제」라는 보고서에 우리 사회 각 분야에 걸친 현안과제와 해결방안을 제기하고 있다한다. 이 보고서를 숙독한 후에 언급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으나, 그렇지 못하고 신문에 실린 단편적인 내용과 이를 평하는 논평에 대하여 왈가왈부 하자니 뒤통수가 긁적거려진다.
이 보고서에 실렸다는 연금제도개혁, 공공요금현실화 등의 방안을 포함하는 다양한 이슈를 다루면서도 시장경제와 민간자율의 원칙을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다는 것에 시비를 걸고 싶지는 않다. 이것은 누구나 강조했던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보고서에 실렸다는 「고교평준화정책의 혁파」와 「수도권집중억제정책의 포기」라는 파격적인 제안에 대하여, 대부분의 신문의 사설과 논평에서 박수를 보내는 것에 대하여 나는 열을 받고 말았다.
수도 없이 교육부를 거쳐간 장관들이 짧은 재직기간 내에 업적을 남겨 보겠다고 엉뚱한 일을 척척 벌리고 있는 마당에, 10년 앞의 나라를 내다보며 수많은 우수한 인재들이 모여서 만들었다는 우리 교육의 「10년 대계」가 겨우 이렇다하니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 일인가.
이 보고서에서 주장하는 「고교평준화정책의 혁파」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점에서의 분석을 통해서만 이 정책의 타당성을 파악할 수 있으니 조금 뒤로 미루고, 「수도권집중억제정책의 포기」를 먼저 다루어 보자.
이 문제는 실례를 들어 이 글을 읽는 사람의 손바닥 위에, 곧바로 그 문제점이나 해결방안을 올려놓아 줄 수가 있겠기에 말이다.
세계경제를 손안에 넣고 쥐고 흔들듯이 끝없이 뻗어가던 일본경제가 10년 간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들의 경제를 지탱하며 달러를 긁어모았던 공업생산성은 크게 후퇴하지 않았다는데도 왜 그들은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금융산업의 낙후」에 있다고 한다. 세계적 기준에 미달되는 관행으로 운영되고 있는 금융기관을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하지 않고, 끌어안고 가기 때문이란다. 80년대 말까지 일본의 경제가 뻗어나갈 때와 같이, 90년대도 꼭 같은 관행대로 금융기관이 운영되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80년대의 운영은 세계가 본받아야 할 운영방식이고, 90년대에는 세계기준에 미달된 방식이라 하여야 하는가.
이는 바로 금융기관의 운영방식이 세계적 기준을 따르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라기보다는, 금융기관이 지금 부실채권을 많이 가지고 있느냐 아니면 많은 이익을 유보자금으로 두고 있느냐에 따라 운영이 잘 되고 있느냐 혹은 잘못되고 있느냐를 따질 따름인 것이다.
그러면 일본금융기관이 80년대는 많은 이익을 내고 있었는데, 왜 90년대에 들어 갑자기 부실해 졌겠는가?
이 답은 너무나 명확하다.
80년대 후반에 땅이나 집 값이 80년대 초에 비해 두 배까지 올랐다가, 90년대에는 반으로 떨어져 옛날의 가격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주식은 최고 4만 포인트까지 올랐다가 지금은 만 포인트를 오르내리고 있다. 부동산과 주식값으로 10년사이에 1경원이 날아가고 말았다.
이때 어떤 현상이 일어나겠는가.
땅을 담보로 돈을 빌려준 부동산회사나 유통업체들이 망하게 되면 은행은 꿔준 돈을 받을 길이 없으니 그만큼 손해를 볼 것이다. 그리고 은행은 고객이 맡긴 돈에 대한 이자를 주기 위해 돈놀이를 할 뿐만 아니라, 수익률이 높은 주식에 투자를 한다. 그런데 주식 값이 급격히 떨어져 산 가격보다도 못하면 그만큼 손해를 보아 고객에게 줄 이자는커녕 고객이 맡긴 돈에 대한 원금도 건지지 못하니 금융기관이 부실해 지는 것은 당연하겠다. 그들이 갖고 있는 50여조엔의 부실채권이 이렇게 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일이 어찌 금융기관의 운영방식에 잘못이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만 밀어 부칠 일인가. 이것은 국가가 부동산거품과 주식거품이 자꾸자꾸 커지고 있는데도, 이를 진정시키지 않았던 이유에도 큰 몫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부동산과 주식거품이 꺼질 때 금융기관만이 호되게 당한 것은 아니다. 부동산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니 시민들도 집을 마련하겠다고 자기가 가진 돈을 몽땅 털고, 여기에 막대한 융자금까지 보태 집을 장만하였겠다.
그런데 집 값이 반으로 떨어지다 보니, 자기가 투자한 돈은 다 날렸다 포기를 해도 집을 판돈으로 융자를 갚을 길이 없게 되었다. 이러하니 무슨 흥으로 왕성한 소비집단이 될 수 있겠는가. 소비진작을 위해 「진흥권」을 나눠준다 해도, 어찌 거품에 멍든 삼사십대가 경제가 활성화가 될 만큼 소비를 하려 할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어떤 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을 알 것 같지 않은가.
선진국은 지가가 국민총생산액과 1대 1 정도란다. 그런데 우리의 지가 총액은 2000년 시가기준으로 국민총생산액의 네 배인 1900조원 정도란다. 그러니까 우리의 땅값과 집 값에는 지금도 거품이 들어있음을 알 수 있다.(아무리 인구 밀도가 높다는 나라이지만)
그런데도 수도권집중을 포기하여 점점 서울과 수도권의 집 값과 땅값을 올려 거품을 부풀려놓겠다 한다. 잘들 하는 일이랄 수밖에 없다.
우수한 인력을 공급받기 쉬운 수도권에서 공장을 확장하거나 유치할 수 없어 우리의 첨단 산업이 해외로 나갈 위험이 높으며, 또 해외기업도 수도권에만 투자하기를 원해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수도권에 해외유치공장과 첨단산업공장의 설립이나 확장을 막을 수가 없단다.
우리나라 인구의 1/4이 서울에, 그리고 반이 서울과 수도권에 살고 있다. 따라서 나보고 공장을 지을 때 어디에 짓겠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수도권이라 할 것이다. 소비자에 가까워야 물류비용을 아낄 수 있을 것이고, 또 지방은 황폐해져 가서 모두가 서울로 몰리고 있는 판에 지방에서 어떻게 필요한 인력을 확보할 수 있겠는가.
일본의 동경도만을 팔아도 미국 땅덩어리 모두를 살 수 있다 하였던가. 부동산이 무슨 생산성이 있다고 언젠가는 꺼질 거품을 키우겠다는 것인지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다.
수도권에 공장을 두면 필요한 인력이 모여들고 또 이들을 먹여 살릴 서비스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도 늘 것이니 인구는 점점 불고, 집과 땅 값은 천정부지로 오를 것이다. 또 이 거품이 꺼질 때면 우리 국가경제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이것을 정책대안으로 내놓은 돌대가리들은 누구인가. 옛날에 중·고등학교가 평준화되어 있지 않았을 때, 공부 깨나 한다는 학생만 다니는 학교를 나왔겠다.
아니면 서울대라는 일류대학을 나왔거나, 이도 아니면 외국에서 물을 먹은 자칭 두뇌들이라는 자들이겠지. 웃기지 말라 하라. 선생이 「가」라 하면「가」만 따라했지, 왜 「나」는 될 수 없는 가를 고민해 본적이 없는 자들이다.
남들이 외자유치만이 살길이라 하니 너도나도 외자유치 하잔다. 외자유치에도 그 나라를 살릴 외자가 있고, 또 그 나라를 망칠 외자가 있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그러하니 옛날의 향수에 젖어 「고교평준화 = 하향평준화」라 떠들고 있겠지. 정말로 알지도 못하면서 허튼 소리나 하고 있다. 실제의 통계에 의하면 평준화 후에 학생들의 고교평균점수가 평준화 이전보다 몇 점이 더 높아졌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어찌하여 잘하는 학생이 같이 모여 있으면 학력이 높아지고 흩어져 있으면 학력이 낮아진다 하는가. 이것은 나누기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물높이가 다른 물통들의 물을 모든 물통의 밑면적의 합과 같은 큰 물통에 합치고 나서 물높이를 재보면, 작은 물통의 물높이가 높았던 것보다는 낮고 물높이가 낮았던 것보다는 높은 평균의 물높이를 갖게 된다.
그러나 크기가 다른 통나무들을 큰 것은 큰 것끼리, 중간 것은 중간 것끼리, 그리고 작은 것은 작은 것끼리 몰아서 놓았을 때와, 큰 것과 작은 것을 골고루 섞어서 몇의 집단으로 나누었을 때 큰 것의 개수의 차이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통나무의 경우에는 몰아 놓았건 흩뜨려 놓았건 종류별 개수는 전혀 변함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두뇌는? 사람의 실력은 물과 같은 성질을 갖나, 아니면 통나무와 같은 성질을 갖나? 이런 간단한 것도 고민해 보지 않고서, 장관 입네 무슨 연구소의 우수한 연구원 입네 하니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닌가.
자신들이 엄청난 두뇌인 양, 어디서 주워들은 것에 사로잡혀 주위에서 돌아가고 있는 현실이나 주위에 떠도는 말에 눈과 귀를 열어놓지 못하는 이들은 어리석은 자들일 뿐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지금 당장 하여야 할 경제계의 현안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제관련 장관이나 연구원들이, 감히 백년대계라는 교육에 대하여 엉터리로 떠들어대고 있는데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어찌 박수를 보내고 있다는 것인가. 우리 한번 냉정히 생각해 보자.
이 나라를 위해 한번 울어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어찌 국론을 논하리오!
교육의 문제는 앞으로 이야기하면서 풀어가자.
그럼 앞에서 언급한 부동산 거품이 일지 않게 하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다고 잘난 체를 하느냐고…
첫째, 행정수도를 만들어 정부의 업무를 서울에서 끌어내려 여기에 종사했던 사람들을 서울로부터 분산시킨다.
둘째, 서울에서 공부하는 것보다는 지방에서 공부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도록 지방대학에 가장 첨단의 학문을 육성하여 공부를 위해 서울로 몰리는 일은 없게 한다.
셋째, 지방에 육성된 첨단학문에서 파생되는 벤처기업들이 학교주변에서 번창할 수 있도록 토양을 만들어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을 점점 늘려 지역의 균형발전을 꾀한다. 물론 서울 및 수도권에 위치하였던 기업과 본사가 지방으로 이전할 때에 각종의 혜택을 주어, 이전이 보다 득이 되게 하는 기존의 정책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회사의 종사자와 여기에 붙어사는 사람들을 각 지방으로 분산시키는 것이다.
엉터리라고 생각되면 이어지는 글들에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

2. 학벌
우리에겐 인적자원밖에 없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가 힘있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이 인력이 세계 어디에 나가서도 최고의 경쟁력을 갖고 있도록 만들지 않으면 아니 된다.
그런데 우리사회에서는 능력보다는 학벌이 우선이란다.
학벌에는 우리가 잘 알다시피 많이 배운(고등교육 이상) 사람과 적게 배운(중등교육 이하)사람들 사이에 비교되는 학벌이 그 하나로 있다. 그리고 같은 고등교육을 받았거나 혹은 같은 중등교육을 받았어도 배운 학교마다 차별을 두어 졸업학교에 따라 대접을 달리하여, 이에 득을 보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학벌이 또 다른 학벌이라 하겠다.
많이 배운 것과 적게 배운 것에 대한 차별도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러나 배운 기간이 길고 짧으냐에 따라 능력에 큰 차이가 있어, 일한 대가에 대한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도 부정한다면 정말로 사람들은 노력할 힘을 잃게 될 것이다. 급료의 차이는 납부할 세금이나, 돌아오는 복지혜택에 차이를 두어 그 차의 폭을 좁히고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배운 교육기간에 따라 생기는 학벌에 대하여는 다루지 않고, 같은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 사이에서 생기는 학벌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왜냐하면 두 가지 모두를 다루게 되면 논쟁의 초점을 맞추기가 어려워질 염려가 크며, 또 어느 나라에 있어서나 대체적으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주로 그 나라를 이끌어 가는 지도층으로 확약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학벌문화를 타파하는데 주로 다루어 져야 한다 생각되기 때문이다.
즉 각각의 대학을 나온 사람들끼리 뭉쳐서는 경쟁을 멀리하고 끼리끼리가 탐나는 자리들을 독점하여 서로 봐주기를 일삼는다면, 그 사회의 발전이 저해되어 급변하는 국제사회에서 우리만 뒤쳐 질 위험이 크다 하겠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이 국가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벌의 폐해나 이의 타파방법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 솔직히 이야기 해 보자.
초등학교 때 공부를 열심히 하여 1, 2등을 하였어도 중학교 때 공부를 게을리 한 경우와 초등학교 때는 게을리 하였으나 중학교 때 열심히 하여 중학교 교과과정 모두를 소화한 경우에 있어서, 어느 사람이 더 능력 있다고 하겠는가.
당연히 중학교 과정을 모두 소화한 사람이 능력이 있다 할 것이다. 왜 그런가? 이것은 중학교 교과내용을 충분히 이해를 한다면 초등학교과정의 교과내용 모두를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학문에는 단계가 있고, 높은 단계로 올라갈수록 이해의 깊이가 더 깊어져 낮은 단계의 학문에서 모르고 지나쳤던 문제도 높은 단계에 익숙해진 눈으로 보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따라서 중학교 때 열심히 공부하는 것보다는 고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낫고, 고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하는 것보다는 대학교 때 더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낫다 하겠다.
물론 각 단계마다 열심히 공부하여 각 단계에서 배울 것을 모두 소화한다면, 한 단계 더 높은 단계에서 공부하기가 수월하기에 모든 공부에서 게으름을 떨지 않고 열심히 할 필요는 꼭 있다 하겠다.
지금은 새로운 지식과 기술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따라서 대학 때 아무리 좋은 성적으로 졸업을 하였다 해도 직장생활에서 공부를 게을리 한다면 자기가 하는 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곧바로 잃는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를 손에 쥐어주는 말로 풀어쓴다면, 민족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에 들어가 수석으로 졸업하여 직장을 잡은 후에 세계 최고의 대학 때 배운 것이 다인 양 추가적인 공부를 전혀 하지 않고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다하자.
그리고 우리나라의 지방대학을 나왔지만 그와 같은 직장의 같은 분야의 일을 하면서도 자기가 하는 일이 발전해 가는 세계적 동향, 이 일에 필요한 지식, 문제점을 빨리 찾아내고 또 이를 쉽고 빨리 해결하는 것이 몸에 밴 실무경험을 풍부하게 쌓은 사람도 있다 하자.
이런 경우에 있어서, 십 년 아니 이십 년 후에 이 둘을 비교할 때 어느 누가 더 능력 있는 사람으로 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런 말 같지 않은 것을 예로 들어 쓴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이제 지식의 덩어리가 너무나 빨리 커가고 있어 자기가 꼭 알아야 할 것조차 감당하기에 힘에 겨운 세계로 가고 있으며, 또 세계의 모든 사람이 나와 직접적으로 경쟁관계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무시하고서 우리 교육제도가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고들 하기 때문이다.
어찌 호랑이 담배 피던 때의 생각을 지금도 버리려 하지 않는지 참으로 한심스럽다.
왜 일류대에 많은 학생을 입학시킬 수 있는 명문고와 명문입시학원이 꼭 필요하다고 하는가.
고등학교의 일반적인 지식의 밑바탕 위에 대학의 전문지식이 확고히 자리를 잡았을 때, 그는 전문가로서 제 역할을 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옛날의 명문고의 명성과 지금의 특수 목적고의 명성이 왜 중요한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고등학교에서보다는 대학 때 공부를 더 열심히 한 학생을 많이 배출하는 교육이 되도록 우리의 교육제도를 갖추는 것이 우리 교육정책이 나아갈 길이다.
한편으로 일류대학의 간판이 왜 필요한가?
대학 4년 간 배운 것은, 벌써 몇 십 년 전부터 그럴 수밖에 없다는 변함 없는 분명한 사실로 증명된 것만을 배운 것이다. 지금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새로운 이론과 기술은 전혀 맛도 보지 못하고 졸업을 한 것이다. 그런데도 일류대의 간판에만 매달려 있을 것인가. 너무나 부질없는 짓일 뿐이다.
대학의 교육내용은 자신의 직장생활에 필요한 아주 기초적인 지식만을 제공하여 줄뿐이다. 따라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려면 끊임없이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이 끊임없는 공부가 일류대의 자만심과 삼류대의 열등감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는 언제나 남에 뒤쳐지는 나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각설하고 중학교 때의 경쟁보다는 고등학교 때의 것이, 고등학교 때 경쟁보다는 대학교의 공부에서 그리고 대학교 때보다는 사회에서의 치열한 경쟁이 더 값진 것이다. 이 때 뒤쳐지지 않는 사람이 진정한 능력을 갖춘 실력자인 것이며, 이들이 세계경쟁에서 이 나라를 끌어올릴 것이다.
자! 이제 우리 모두 대학의 줄세우기에 따른 일류에서 삼류대학 앞에 붙는 간판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며 패거리를 만드는 옛날 버릇은 말끔히 버리자.
그리고 패거리에 휩싸여 경쟁을 멀리하므로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무능한 인간은 되지 말자. 이제 세계는 하나란다. 우리끼리 감싸고 있어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잃으면 회사도 망하고 내 일자리도 없어지는 것이다.

3. 고교평준화
어느 신문의 유명한 한 평론가는 그의 칼럼에서 「사회를 좀먹고 교육붕괴를 일으키는 핵심은 바로 교육평준화」라 했다. 그러면서 「지성의 훈련과 연마의 핵심과정은 경쟁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 경쟁을 제거하면 교육의 수준과 질과 내용을 하향시켜 모두를 '도토리'로 만든다」고 걱정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교육에서의 치열한 경쟁은 중등교육에서가 아니라 전문지식을 배우는 마지막 교육인 대학교육에서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간과한 것 같다. 즉 초등학교 때 아무리 공부를 잘 하였어도 중학교 때 공부를 게을리 하면 고등학교 교육을 못 따라가듯이, 교육의 중간단계인 중등교육에서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기보다는 대학 때 온 힘을 쏟아 공부하여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중등교육은 주로 일반사회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소양을 배우는 과정이다. 따라서 대학입시에서 변별력을 높인다고 틀리기 쉽게 비비꼰 문제를 푸는 연습을 많이 한 사람이 일류대학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치열한 입시교육이 교육의 목표가 되어서는 아니 되고, 또 이때 아무리 열심히 한 공부도 전문적인 직업을 갖추는 데에는 태부족하므로 단지 기본원리를 충분히 이해하도록 하는데 중등교육의 목표를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중등교육에서는 '예, 그렇군요'라면서 무조건 잘 외우는 우등생만을 기르기보다는 '아니요, 이럴 수도 있잖아요'라며 부정에서 긍정을 이끌어 내느라 굼뜨게 원리를 찾아내고, 또 엉뚱한 생각도 하는 창의적인 학생들도 길러야 할 것이다.
이러기 위해서는 '예, 아니요'로 답하는 입시만을 위한 되풀이교육에서 벗어나 원리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여유와 '내가 누구인가'도 고민하여 올바른 사춘기를 거치도록 시간을 주어 훌륭한 시민으로 성장시키려면, 중등교육이 대학입시교육에서 탈피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고등학교에서는 일류대학을 가기 위한 입시교육에서 벗어나 대학의 교육을 따라 가기에 충분한 소양만을 갖추도록 하면 충분할 것이고, 점점 더 바뀌어 가는 지식사회에서 살아남는데 필요한 전문지식을 배우는 것은 대학이니, 이 때에 가장 치열한 경쟁과 밤새워 공부를 하도록 만들 때 우리의 국제경쟁력이 향상될 것이다.
그런데도 밤낮 없는 공부를 고등학교 때에 하고, 정작 공부하여야 할 대학 때에는 공부를 아니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은 일류대학에 입학한 학생은 졸업만 하면 한평생 어디서나 실력이 있는 일류대 출신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열심히 공부할 필요가 없다한다. 실제적으로 최근의 조사에 의하면 서울대생 중에서 하루 공부시간이 2시간도 아니 되는 학생이 69%가 되지만 이들이 졸업을 하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한다.
한편으로 이 삼류 대학의 졸업생들은 대학 때 열심히 공부하여 서울대 이상의 실력을 갖추었다하여도 이 능력이 사회에 진출할 때 받아들여지지 않고, 언제나 삼류인생으로 취급을 받다 보니 자포자기가 앞서 이들도 공부를 등한시하고 있다.
이와 같이 누구는 자만심에, 어느 누구는 열등감에 공부를 하지 않다 보니 국내에서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은 외국의 대학졸업생들에 비해 그 수준이 매우 낮고, 또 이들을 받아들인 기업들은 상당한 기간동안 막대한 돈을 들여 재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실무에 투입할 수 없는 현상마저 벌어져 국가적인 낭비가 크며 국가경쟁력은 제자리걸음을 일삼고 있다하겠다
우리가 길러낸 인재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것은 대학교육이 잘못되고 있기 때문인데 왜 엉뚱하게도 우리교육의 문제점이 중등교육의 잘못에 있다하는지 통 알 수가 없다.
즉 앞에서도 밝혔듯이 교육관련 연구기관이 아닌 한국개발연구원 및 경제장관까지 나서서, 어떻게 하면 우리의 「대학교육」을 충실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의논은 없고, 단지「고교평준화」가 잘못 되어 우리나라의 교육에 문제가 있다한다.
이런 판국에 최종근 교수는 「평준화는 죽음이다」라는 제목으로 조선일보에 기고를 썼다. 그는 「자연세계에서 '평준화의 과정'은 역동적이지만 이미 '평준화된 상태'는 변화가 없는 죽음의 상태를 의미한다」며, 과학적이란 사회주의가 실패하였으므로 우리 교육은 역동적인 비평준화 상태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부모연대를 위시한 여러 사람들도 중·고등학교의 평준화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평준화가 우리 교육현실에 어떠한 악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한 분명한 언급이 없다. 대체로 우리 교육에서 나타나는 다음의 문제들이 평준화에서 야기된다는 투이다. 즉 학급붕괴, 치열한 입시경쟁, 창의력을 키울 수 없는 교육, 막대한 과외비에 시달리는 가정경제, 많은 우수한 인재를 배출하지 못함….
그러나 이와 똑같은 문제를 명문사립의 유치원 및 초·중·고등학교와, 그리고 명문의 공립고등학교가 있어 비평준화 교육을 시키고 있는 바로 이웃나라인 일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면 평준화와 비평준화교육에 의해서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을 비교·분석하여 특별한 이유도 없이 80%의 학부모가 원하는 평준화를 반대하는 이유를 유추 및 평가를 해보자.
첫째, 우리는 대부분의 제도 및 정책을 일본의 것을 그대로 따라했는데, 그들과 다른 정책을 펴기 때문에 불안감에서 하는 소리다. 그리고 미국도 의무교육의 연장에 따라 공립학교가 수많이 건립되었지만 그들도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사립학교가 있다. 따라서 우리도 일본과 미국과 똑 같이 따라 해야한다?
그러나 비평준화교육을 하는 일본도 우리가 안고 있는 똑 같은 문제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들을 앞서려면 그들과 다르면서도 보다 나은 정책을 써야 할 것이다.
둘째, 옛날의 비평준화의 경우, 일류중학교에는 여러 초등학교에서 가장 우수한 몇 명씩만 뽑혔고, 일류고등학교에는 일류중학졸업생 중에서 공부를 안한 일부는 탈락되고, 여기에 이 삼류 중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에 의해 채워져 정말로 우수한 학생들끼리 집단적으로 경쟁을 하게 되었었다.
한편으로 지금과 같이 강제적으로 평준화된 경우에는 우수한 학생들이 뿔뿔이 흩어져 각 학교마다 몇 명씩만 있게되어 소수인 이들끼리만 경쟁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비평준화와 평준화 시에 경쟁을 이겨내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우수한 학생의 총량은 어떻게 다를까.
나는 이 총수에는 차이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즉 일하지 않는 일개미 10%를 속아내도 나머지중의 10%가 다시 일하지 않는 일개미가 되는 자연법칙과 같이, 우수하다는 두뇌로 일류 중·고등학교에 들어간 몇 십%가 이 삼류학교의 우수한 학생만도 못한 경우가 흔하게 일어났음도 상기할 필요가 있겠기에 말이다. 따라서 평준화함에 따라 경쟁이 약화되어 우수한 인재가 줄어들었다는 것에는 의문을 표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앞에서 물높이가 다른 물통들을 합치는 것과, 키가 다른 통나무를 나눔에 따른 결과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사람의 두뇌와 능력이 쉽게 변할 수 있는 물과 같은 성질인지, 아니면 변화가 거의 없는 통나무와 같은 성질을 띠는지에 대한 것을 나는 정확히 모른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도 고교평준화로 우리교육을 망쳤다고 설명할 수는 없겠다.
사람의 두뇌와 능력이 물과 같이 가변적이라면 우수한 학생이란 원래 없다는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특수목적고에 들어가는 학생은 중학교 때 열심히 공부한 학생이다. 이 학교에는 타고난 공부벌레들이 모여있어 서로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공부를 하므로 모두가 성적이 향상될 수 있다. 이것은 나도 수긍할 만하다.
그러나 이렇듯 능력이 노력에 의하여 만들어진다면 대학에서 공부를 하지 않으면 말짱 도로목이 아닌가. 이 논리라면 우리가 경쟁력 없는 인력을 배출하는 것은 고교 때 공부를 아니 해서가 아니라, 대학 때 공부를 하지 않아서라고 할밖에 없다.
한편으로 사람의 두뇌와 능력이 막대와 같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면 앞의 나누기 셈에서 보듯이 정말로 고교평준화 때문이라고 하는 것은 억지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영재의 두뇌를 가진 자식을 둔 부모는 그가 영재끼리 있건 둔재들과 섞어 있건 그의 학력은 변함이 없을 텐 데도, 자기자식이 「선택의 자유」를 잃었다고 한다. 잘 하는 학생끼리 모여있을 때만 자극을 받아 공부를 잘 한다면 당신의 자식은 타고난 영재가 아니며, 이런 자식이라면 대학에 가서 코피 터지게 공부를 하게 뒷바라지를 하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고등학교의 공부보다는 대학 때의 공부가 당신의 자식을 평생 먹여 살릴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좋은 학벌만 갖고 있으면 지금 잘 나가고 있다고 ….
그러나 이것도 얼마 가지 못할 것이다. 세계는 열려 있다. 이제 우물안 개구리는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 왜 이것을 회피하려 하는지 나는 안타까울 뿐이다.
한편으로 미적분을 풀 수 없는 학생이 이공대에 들어가는 것은 내신성적이 좌우하는 대입시로 한 과목의 심화공부보다는 모든 과목에서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 보다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능시험, 대학별 입학기준의 미비 등의 입시정책의 잘못이지 평준화의 잘못이 아닌 것이다.
셋째, 초·중학교의 교과내용은 일반적이고 또 그 내용을 모두가 알지 않으면 사회생활을 하는데 지장을 받을 만큼의 꼭 필요한 내용이다. 따라서 모두가 한 교실에서 교육을 받아도 될 것이다.
그렇지만 고등학교교육은 그 교과내용의 수준이 높아져서 학생마다의 취미와 능력에 따라 수업내용을 받아들이는 정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선진외국의 대부분의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자기능력에 맞는 수준의 과목이 개설된 교실로 이동하여 능력별 수업을 받는 것이다.
우리도 이렇게 해야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능력과 흥미가 다른 학생들을 마구 섞어놓고, 중간의 학생에 맞춘 수업으로 많은 학생이 수업시간에 잠을 자는 현상이 평준화 때문이라 하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실제로 평준화 이전에 치열하게 공부하여 들어간 일류고등학교 학생들도 한 반에 몰아넣고(50-60명) 공부를 시켰을 때 모두가 따라 간 것은 아니고, 과목보다 몇 명씩은 몸을 뒤틀며 빨리 수업이 끝나기까지 딴 짓들을 하였던 것이다.
넷째, 우리나라 교육의 최종목표는 이 나라를 이끌 우수한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다. 즉 일류대에 입학할 수 있는 고등학교 졸업생을 기르는 것이 최종목표가 아니라, 세계우수대학을 졸업한 학생과 실력을 다투어도 전혀 지지 않는 우수한 대학졸업생을 길러내는 것이다.
그런데 고등학교의 평준화가 대학의 실력을 떨어뜨렸단 말인가.
내외국의 교육학자들이 우리의 대학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바로 교수사회의 경쟁이 치열하지 않고, 대학에 대한 투자가 너무 적으며 또 공부하지 않는 학생도 졸업할 수 있는 현실 때문이라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고심하여 고쳐야 할 것은 고교평준화가 아니라, 대학을 졸업하는 학생 모두가 세계최고의 경쟁력을 갖도록 만드는 것이다.

4. 대학의 줄세우기
학벌타파에 대한 많은 의견이 토론방에 제시되고 있음에, 때때로 들락거리며 많은 공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나 나름대로의 의견을 적고 싶은 욕구를 누를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의 글을 보면 학벌의 발생은 일류대학과 이 삼류대학 졸업생들간에 차별을 두어 따로 놀고 있다는 것에 근원이 있다는 것에는 일치하고 있는 것 같다.
즉 일류대학에 입학한 학생은 졸업만 하면 자기 분야에서 실력도 별로 특출 날게 없는데도 그저 서울대라는 간판과 인간관계를 잘한 덕분에 한 평생 어디서나 실력 이상의 사회적 대우를 받으며 실력이 있는 일류대 출신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삼류 대학의 졸업생들은 대학 때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여 서울대 이상의 실력을 갖추었다하여도 이 능력이 사회에 진출할 때 받아들여지지 않고, 언제나 삼류인생으로 취급을 받아 정정당당한 경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데 학벌의 문제가 있다 하겠다.
만약에 일류인 서울대에는 이 삼류의 대학에 들어가는 학생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우수한 인재들만이 들어갈 수 있고, 또 이 우수한 인재들이 대학 4년 동안 밤새워 공부를 하여 세계 초일류의 대학졸업생들과 다투어도 전혀 뒤지지 않고, 그리고 이 천재들이 우리나라가 필요로 하는 사회적이거나 과학과 기술적인 어떤 문제이든 간에 척척 해결하여 모든 분야에서 세계 최첨단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면, 이 삼류 대학졸업생이나 우리 국민 누구도 서울대졸업생들이 앞장서서 이 국가를 이끌어 가는데 시비를 붙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학입시에서 변별력을 높인다고 틀리기 쉽게 비비꼰 수능시험을 실수하지 않고 몇 점 더 잘 맞았다고 일류대학에 들어가고, 자기 본 실력대로 수능시험을 못 쳐서 이 삼류로 밀리거나, 또 재수를 하면 쉽게 일류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면 누가 일 이류의 진정한 차이를 인정하겠는가.
그리고 대학 4년 동안 공부는 하지 않고 고수입의 과외와 이 돈을 쓰느라고 흥청대며 허송세월을 보낸 일류대의 실력을 어찌 인정해 주겠는가.
실제적으로 최근의 조사에 의하면 서울대생 중에서 하루 공부시간이 2시간도 아니 되는 학생이 69%가 되지만, 이들이 졸업을 하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한다.
어느 누구는 자만심에, 어느 누구는 열등감에 공부를 하지 않다 보니 국내에서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은 외국의 대학졸업생들에 비해 그 수준이 매우 낮고, 또 감싸고도는 학벌이 밥을 먹여 주다보니 직장생활에서도 끊임없는 노력보다는 아부가 난무하여 국가기술력은 언제나 선진기술의 칠 팔십%에 머무는 경쟁력밖에 갖추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지금도 쉼 없이 새로운 지식들이 나오면서 지금까지의 지식들을 새롭게 대체하기도 하여, 한 평생동안을 아주 열심히 공부하고 새 기술을 익히기 위해 노력을 하지 않으면 어느 조그만 분야에서조차도 세계첨단을 걷고 있는 사람들에 곧 바로 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일류대학에 가겠다고 초등학교 때는 중학교 공부를, 그리고 중학교 때는 고등학교 공부를 하는, 지나고 나면 아무 쓸데도 없는 선행공부를 한다. 부모의 욕심으로 하는 선행공부를 한다고 학원에서 죽치며 억지로 암기형 지식만을 집어넣는 바람에 창의력은 싹이 잘리게 되고, 또 이도 모자라 수조 원의 돈을 없애기에 모두가 몰두해 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는 어디서건 무엇이든 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화시대에 외울 필요도 없는 것도 모조리 외우고, 배배꼬인 문제들을 푼다고 피터지게 공부를 하여 대학에 들어가고 나면 진이 모두 빠져 공부하고는 담을 쌓는다.
대학 때 공부를 하지 않던 버릇은 계속 연장되어 직장에서는 장하나만 달아도 실무에 대한 공부는 전혀 하지 않고, 단지 부하를 다루는 재미에 빠져 실무에 관한 한 곧 먹통이 되어 버린다.
학생들은 동아리져 공부하며 옳고 그른 것을 따지느라 밤을 새워보지도 않고, 틀린 답안을 보고도 고쳐주지 않는 교수 밑에서 배운 학생들은 노벨상을 탈만한 새로운 지식들을 머리에 가득 담고 대학을 졸업하는 것이다.(그것이 아님이 증명된 지식을 그것이 옳다고 알고 있는 것은 세상을 놀랄 킬만한 것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의 교육이 이런 실정이다 보니 대학의 교수가 하는 발표에서도, 국내최고의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말하는 내용에서도 쉽게 틀린 내용을 끄집어 낼 수가 있다. 70∼80%만 알고 나머지는 틀리게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그 분야의 전문가라 한다. 정확히 아는 공부를 몸에 익히지 않는 사람도 어찌 전문가라 하며 부끄러워하지 않는지 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
엉터리가 통하는 세상이다 보니, 전문가들 수십 명이 모여도 하나의 어려운 문제를 속 시원히 해결을 하지 못하고 끙끙대다가 결국에는 외국에 문제해결을 맡기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만약에 자기가 알고 있는 분야만큼만은 훤히 알고 있다면, 잘 풀리지 않는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이런 전문가 몇 명만 모아놓으면 안 풀릴 문제가 어디 있겠는가!
한편으로 이제는 무엇이든지 공급과잉의 시대이다. 그러기에 세계최고의 경쟁력을 갖추지 않는 상품은 시장에서 밀리게 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세계 초일류상품을 만들어 내야만이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다.
특히 무역의존도가 70%가 넘고, 수출상품이 국내생산의 45%정도를 차지한다하니 세계시장을 잃는다면 우리와 다음 세대들이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더구나 이웃 중국은 값싼 인건비의 풍부한 노동력에, 능력 있는 엔지니어들이 해마다 수없이 쏟아져 나오고(공학계열의 학생을 매년 약 백여 만 명씩 배출한다함), 또 외국에서 공부한 우수한 해외두뇌들(미국유학생은 우리보다 많음)이 다투어 국내로 들어온단다.
그리고 커다란 중국시장에 눈이 어두워 부메랑효과는 아랑곳하지 않고, 첨단기술과 자본을 가진 선진국들이 중국에 서로 다투어 투자를 하고 있다. 우리가 걷고 있을 때 그들은 뛰고 있는 것이다.
선진기술은 저만치 앞서가 있고, 우리 뒤를 무섭게 쫓아오는 후진국사이에 낀 호두까기 속에 끼인 호두알 신세인데도 학연, 지연으로 서로 감싸며 경쟁을 도외시한다면 어찌 하자는 것일까.
우리는 크지 않은 나라에 수천 년 동안 살아오면서 부존자원을 많이 소모해 왔고, 또 인구도 많아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우수한 인력뿐이란다. 그러기에 이 인력을 잘 활용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지하자원이 많은 소련, 인력이 많은 중국, 그리고 지금 세계 2위의 경제국이라는 일본에 우리의 상품을 팔아 이 세 나라를 우리 상품의 시장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활용에 따라 풍부한 자원이 될 세 나라의 중심에 있어, 물류중심에 설 수 있는 지정학적 이점도 있어 우리의 분발을 더욱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세계 경제국 중에서 다섯 손가락에 들 수 있는 나라들 사이에서도 중심이 된 나라가 되려면, 우리 국민들은 적어도 일당 십의 능력을 갖추어 앞선 일본을 따라 잡고 뒤쫓는 중국과 소련을 뿌리쳐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 해에 적어도 이 삼십만의 대학졸업생들이 세계우수대학의 졸업생에 전혀 뒤지지 않는 능력을 갖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교육평준화에 문제가 있다하며, 몇 개의 일류대학에 매달려 이를 졸업하는 일 이만 명의 우수한 대학 졸업생들(대입준비에 진이 빠진데다 한평생을 먹여 살릴 학연을 얻은 자만심에 공부하고는 담을 쌓은 일류대 졸업생들이 세계 일류의 졸업생인지는 의문이다)에 이 국가의 미래를 맡기려 한다.
이들에게 일당백을 하라는 것인지, 아니면 일당 천을 하라는 것인지 통 모르겠다. 일어서지도 못하고 그 무게에 눌려 주저앉고 말겠다.
각설하고, 중등교육이 대학입시교육에서 탈피하고, 우리나라가 갖고 있는 인재를 총동원하며, 또 전문분야의 직업을 갖는데 꼭 필요한 전문지식을 배우는 대학에서 줄곧 경쟁심을 유발하여 밤낮으로 공부하도록 닦달하기 위해서는 대학의 줄세우기가 먼저 타파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서울대를 대학원중심대학으로 바꿔야 한다는 일본흉내내기나, 서울대를 아예 없애야 한다는 등의 의견이 많으나 이것은 본질적인 문제해결이 아닌 상 싶다.
근본적인 문제해결은 중·고등학교를 평준화함에 따라 이제는 어느 중·고등학교를 나온 것을 따지지 않듯이, 어느 대학을 나온 것을 따지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는 대학의 평준화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것 같다.

5. 대학의 평준화
우리나라 교육을 살펴보면 초·중·고는 평준화가 되어있다. 즉 모든 학생들의 능력은 비슷하다고 보고 우열을 가리지 않고 학생수를 학교수로 나뉘어 배정하는, 학생의 학교선택에 자의성이 배제되어 있다. 그러나 대학은 치열한 입학시험을 치러 자기의 능력에 따라 줄세우기가 된 대학에 차례대로 들어가지 않으면 아니 된다.
즉 우리교육은 초·중·고를 평준화시켜 두뇌를 대집단화한 것인 반면에, 대학은 능력별로 나누어 소집단화하여 교육을 하는 꼴이라 하겠다. 즉 우리 교육에는 두 개의 교육철학이 혼재된 것이다.
그러니 소집단화(학교의 서열화)가 좋으니, 대집단화(평준화)가 좋으니 티격태격이나 하고 있지, 하나의 교육이념에 맞춘 일관된 교육체계를 세워 보겠다는 의논은 전혀 없는 것이다.
제발 이제 하나의 교육이념에 맞춘 일관된 교육체계를 세우기 위해 대학의 줄세우기를 타파하여 대학을 평준화시키고, 평준화된 대학마다 특성화를 시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비행기로 이동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땅덩어리가 큰 나라가 아니다. 고속도로에 의해 일일생활권이 가능하고, 고속철도에 의해 반나절 생활권으로 바꿀 수 있는 나라이다.
한편으로 매년 나오는 아무리 우수한 일류대 졸업생 일 이만 명으로, 해마다 인구의 0.4%에 지나지 않는 가리고 가린 백 오십여 만 명씩 쏟아져 나오는 중국의 대학생들이 만들어내는 학문과 기술을 앞으로 어떻게 대적하려 하는가.
「일당 십」의 능력을 발휘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4년제 대학을 매년 졸업하는 이삼십만의 우리나라 대학졸업생들만은 세계 최고수준의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일본을 이기고, 뒤쫓아오고 있는 중국을 뿌리칠 수 있지 않겠는가.
고등학교 교과내용만을 열심히 공부한 사람 수십만 명도,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한 수천 명을 대적할 수가 없을 터이니, 그 잘난 일류대학에 들어가겠다고 고등학교까지만 열심히 공부하지 말고, 진정한 공부는 대학부터 하도록 만들자.
대학을 평준화시켜 모든 대학이 끝없는 경쟁체제에 들어간다면, 공부는 않고 연구비 따온다고 술집에 있거나 연구비 받은 과제를 대학원생에 일임해 버리고 세월이나 낚는 교수는 없어질 것이다.
대학이 바로 서야, 초·중·고등학교의 교육이 바로 설 것이다.
대학에 있어서의 올바른 경쟁은 우리 교육의 문제만을 해결하는 것으로 끝낼 일이 아닐 것이다. 대학 때 서로간에 보이지 않는, 그렇지만 서로 도우며 정정당당히 경쟁하여 얻은 정확한 지식과 이것이 몸에 밴 건전한 대학졸업생들은(컨닝은 전혀 모르는 모범생) 그들이 갖게되는 직장에서도 떳떳한 경쟁의 법칙을 심어놓아 학연, 지연 등이 없는 밝고 맑은 직장과 사회를 만들어 놓을 것이다.
이렇듯 우리 교육의 문제점은 대학의 줄세우기에서 왔고, 이의 해결방법은 대학의 평준화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우리 교육의 문제점이 고교평준화에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고교평준화제도를 개선하는 방법을 논하며, 언제까지 부질없는 이념 논쟁만 벌일 것이냐는 의문을 던지고 있다.
나는 이 논쟁에 교육적인 내용으로 직접적으로 뛰어들기에 앞서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어 의문을 제기하고 또 내가 제시한 해결점을 강조해 보고자 한다.
편도 4차선도로에서 갑자기 편도 2차선 도로로 좁아진 경우를 상상해 어떤 일이 벌어지나를 살펴보자.
4차선의 넓은 도로를 달릴 때는 1차선에서 4차선까지 자기의 능력에 맞는 속도로 달릴 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2차선으로 좁아진 곳에 이르면 3차선과 4차선을 달렸던 차들은 차선을 잃게되어 1, 2차선으로 바뀌어 달리지 않으면 아니 된다.
전차선인 4차선에 걸쳐 달리던 차의 양이 워낙 적어, 2차선으로 바뀌어 달리더라도 그 사이사이에 3차선과 4차선을 달리던 차가 끼어 들 수만 있다면 제 속도를 잃지 않고 달릴 수가 있다.
그러나 시작점부터 1, 2차선을 띄워야할 찻간간격만 벌리고 연이어 달릴 경우에는 갑자기 차선이 줄어 3, 4차선으로 달리던 차가 끼어 들게 되면 차의 속도는 뚝 떨어지는 병목현상이 생기게 된다.
이때 차의 양이 두 배로 늘어남에 따라 속도가 반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 비집고 들어가겠다고 난리를 피우는 바람에 속도가 반 이하로 뚝 떨어지는 것을 우리는 많은 경험을 통하여 잘 알고 있다.
자, 이 경우 문제 해결을 어떻게 할 것인가.
여러 가지 해결방법이 있겠으나 극단적인 두 가지 방법에 대하여 살펴보자.
첫째는 아예 넓혀진 4차선 중 두 개 차선을 폐쇄시켜 처음부터 2개 차선으로 좁혀 달리게 함으로써 병목지점이 없어져 이 지점에서의 혼란을 없애는 것이다. 이때 혼란은 없앨 수 있을지 몰라도 많은 차량을 두개 차선으로 소화를 시키다보니 진입도 어렵고 또 달리는 차의 속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결과 경제속도 이하로 달려 불필요한 연료소모, 시간 낭비 등의 부작용을 낳게 할 것이다.
병목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둘째 방법은 병목지점부터의 2차선을 4차선으로 확장시켜 1차선에서 4차선을 걸쳐 달리던 차가 계속하여 같은 차선을 유지하여 달리게 하는 것이다. 이때는 당연히 병목현상이 일어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속도도 떨어지지 않고 차의 성능과 운전자의 운전습관에 맞추어 자신에 적합한 차선을 따라 잘 달릴 수 있다.
이 두 가지 방법 중에 어느 방법을 택하는 것이 바람직 한 것인가는 물어볼 필요도 없겠다.
그렇다면 교육의 문제로 되돌아 가보자. 중·고등학교는 지금 대부분의 도시에서 평준화가 되어있다. 따라서 서로간에 실력차이는 있는지 몰라도 어느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느냐에 따라 졸업생집단간의 실력차이가 크지 않다.
그런데 대학은 일류에서 삼류까지로 대학들이 줄세우기가 되어 있고, 전체대학의 정원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모든 졸업생을 받아드릴 만큼 정원이 늘었다.
그렇다면 앞의 예를 조금 바꾸어야 되겠다.
즉 4차선 도로가 있는데 반은 4차선 모두가 잘 포장이 되어 있는데, 나머지 반은 4차선으로 도로는 확장되어 있으나 단지 한 차선만 잘 포장이 되어있고 나머지는 비포장 도로라고.
그렇다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겠는가?
병목현상이 일어나는 지점에 빨리 도착하여 편히 갈 수 있는 포장된 도로에 먼저 진입하기 위해, 넓은 4차선에서조차도 요리조리 끼어 들며 과속을 일삼을 것이다. 오직 남들보다 병목지점에 빨리 도착하겠다는 조급한 운전은 자기차선을 지키지 않고 무리한 운전을 하게되고, 이로 인해 사고가 일어나기 쉽고 또 차의 손상이 빨리 오고 운전자도 매우 피곤할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의 중·고등학교의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과 꼭 같지 않은가. 모두가 들어가려는 일류대에 나만은 들어가겠다고 초등학교 때부터 남들에 뒤져서는 아니 된다는 조급증에, 맞춤공부인 과외로 선행공부를 하겠다고 밤늦게까지 공부를 한다. 그러니 자기수준과 거리가 먼 학교수업시간에는 책상에 엎드려 잠이나 자고, 부모는 막대한 과외비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이런 모순을 해결키 위해 무엇보다도 앞서, 4차선에서 1차선만 포장된 구간으로 좁아지는 곳을 꼭 같은 4차선으로 넓혀 포장을 하여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듯이 대학도 평준화를 시키자는 것이다. 그러니까 줄 세워져 있는 대학을 모두 같은 수준의 대학으로 만들어 어느 대학을 나옴에 관계없이 차별을 받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입시교육에서 탈피한 중등교육이 제자리를 찾게 하고, 모든 대학에 경쟁이 넘치게 하여 대학을 졸업하는 모든 졸업생이 세계적 경쟁력을 갖고, 또 대학의 연구실은 첨단의 지식을 쏟아내 우리의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어떠한 기술도 제공해 줄 수 있는 특성화된 대학을 만들어 내자는 것이다.
그러면 대학의 평준화와 각 대학의 특성화는 어떻게 이룩할 수 있을까?
첫째, 평준화방법은 서울의 모든 대학을 서울대학으로 하고 관악, 전농, 공릉 등의 분교를 두는 것이다. 이 방법으로는 국공립대학을 평준화하는 것은 쉽다하겠으나, 수많은 사립대학에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그러나 어느 사립대에서도 학교의 운영이 재단의 보조에 의해 운영되기보다는, 학생의 등록금에 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 재학생과 졸업생이 국립대학에 편입되기를 원한다면 서울대의 분교가 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물론 능력이 있는 사립대는 평준화에 참여하지 않고 나름대로 살아가며 국가가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국립대와 경쟁을 할 수 있다면 서로에게 좋은 경쟁상대가 될 것이다.
또한 지방의 대학들도 그 지역의 대표이름으로 대학이름을 정하고, 도내의 각 지방마다 분교를 두는 것이다.
둘째, 대학의 특성화는 어떻게 이룩될까?
만약에 대학평준화를 이룬다고 지금까지 일 이류의 줄세우기 마저 흩뜨려 놓는다면 더 큰 문제가 일어나는 것은 아닌가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즉 일류대학에서만은 최고로 우수한 두뇌를 받아들여 별도로 교육을 함으로써 그나마 어느 수준이상의 졸업생을 길러내고 있는데, 이 마저도 불가능해 진다면 우리의 미래가 더 암담해 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각 대학마다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로 특성화가 이루어져 있으며, 육성된 이 분야에서만큼은 세계최고수준이라고 하자.
그러면 대학을 입학한 때는 모두가 같은 수준의 대학에 입학을 하지만, 고학년에서 자신의 흥미와 능력에 따라 각 대학이 갖고 있는 특정분야의 연구실에서 공부를 하게 될 수만 있다면 그 졸업생은 그 분야에서만은 세계적 수준에 전혀 뒤지지 않는 학력을 갖게 될 것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대학의 평준화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 특성화는 지금의 「우수연구센터」의 육성과 같은 몇 명의 교수가 참여하는 극히 제한된 분야의 육성이 아니라, 다른 전공의 교수들이 함께 참여하여야 하는 분야로 특성화하자는 것이다.
예로 각 대학의 특성화방법으로 이런 방법이 있겠다. 즉 어느 대학에 '고온·고압 이공학연구소'를 육성하여 여기에 물리, 화학(공학), 금속, 원자력 등을 전공하는 교수들이 모여들게 한다.
이 연구소에는 같은 장치와 소재를 이용하여 함께 연구를 하고 있지만, 전공이 달라 보는 눈이 다른 교수와 대학원생들의 서슴없는 토론이 가능하다면 같은 전공자들끼리만 모여서 할 때보다 학문의 질은 훨씬 더 높아질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대학마다 서열이 매겨져 있어 각 대학마다 특성화를 시키더라도 이 서열을 깨뜨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최근에 가장 각광을 받고 있는 분야의 연구소 즉 나노·생명 이공학 같은 연구소를 지금은 지명도가 가장 낮은 지방대학에 두어 이를 집중적으로 육성을 하는 것이다.
즉 지금의 이름 없는 지방대에 최신의 값비싼 실험설비를 모두 갖추고, 지속적이고 넉넉한 연구비를 지급하여 세계유명대학의 첨단연구실에 전혀 뒤지지 않게 만들어 그 분야에서 가장 우수한 교수진(해외두뇌도 포함)과 대학원 학생들이 스스로 몰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금의 일류대 아닌 일류대를 졸업하는 일이 만 명이 아닌, 이삼 십만 명의 정말로 우수한 대학졸업생이 매년 쏟아져 나올 것이며, 또 대학주변에는 특정분야의 연구에서 파생된 벤처기업들이 생겨 우수한 인재들을 소화해 낼 것이다.
이때 대학교수는 자신의 연구과제에 의해 대학을 옮길 수 있게 하며, 졸업논문을 쓰는 대학 4학년들도 특정분야가 육성된 대학에서 졸업논문을 쓰게 함이 바람직하다할 것이다.
이런 상호교류에 따라 대학교수간에 그리고 학생들간에 치열한 경쟁을 유도하는 대학의 특성화에는 이공계의 특정분야의 육성뿐만 아니라, 앞으로 둘 법률전문대학원과 의과전문대학원은 서울 및 대도시에는 두지 않고 지방에만 두어 지방대학의 육성을 도모할 수 있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즉 이 전문대학원을 진주, 목포, 군산, 안동, 홍성, 충주 및 강릉 등의 지방민이 적은 지역에 있는 대학에 두게 된다면 대학간의 차별을 쉽게 없앨 수 있을 것이다.
대학이 평준화되어 대학마다 특색 있는 분야가 육성되어 있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이 한 대학에 몰리지 않고, 자신의 흥미와 능력에 따라 대학을 골고루 선택을 하게 된다면 학벌의 원흉인 대학의 줄세우기는 없어질 것이다.
그리고 대학의 입학은 자신이 다닌 고등학교가 있던 지역에서 가까운 대학에 하도록 하지만, 몇 가지 정해진 조건에 이르면 쉽게 대학을 옮길 수 있도록 하여 한 대학에 모든 학생들이 몰리지 않게 할 필요가 있겠다.
그렇다고 모든 학생들이 대학에 가는 것이 옳은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대입을 위해 실시하고 있는 「수능시험」은, 대학에서 실시하고 있는 교육을 따라가는데 필요한 기초실력을 갖추었나를 판단하는 진정한 「자격시험」이 되어야할 것이다.
한편으로 대학마다의 특성화에 드는 막대한 경비만을 정부가 담당하도록, 학교운영비의 대부분은 이익자인 학생이 부담하는 것으로 하여야할 것이다. 즉 등록금을 지금의 사립대학 등록금 액수까지 올려서 학교운영비는 학생이 부담하게 하고, 정부의 지원예산은 시설, 연구장비 및 실험 재료비에 집중적으로 쓰이게 함이 좋겠다.
물론 이자율 일부를 정부가 부담하여 학생들은 싼 이자로 학자금을 쉽게 대여 받게 하고, 졸업 후에 갚도록 한다면 능력 있는 학생이 대학교육을 받지 못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여하튼 대학의 평준화는, 강제적인 방법에 의해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평준화시켰음에 따라 중·고등학교의 졸업생간에 있었던 학벌이 점점 없어지고 있듯이, 같은 현상이 대학의 졸업생들 사이에서도 일어날 것이다.

6. 대학의 평준화가 이룩되고 나면
대학의 평준화가 이루어지면 중·고등학교는 입시준비교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문제인 인성교육, 능력별 이동수업, 교과서 개편문제, 지진아 교육 등등 자체적으로 안고 있어 꼭 풀어야 할 교육적 문제를 푸는데 매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맞춤교육인 개인교습이나 학원과외로 학생들을 내몰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사교육비에 가정경제가 피폐하게 만드는 문제도 해결될 것이다.
한편으로 일류대학과 삼류대학의 구별이 없이 명실공히 대학의 평준화가 이루어지면 우리의 고질적인 문제인 학벌문화는 자연스럽게 없어질 것이다.
이로 인해 일류대 졸업생은 그의 긴 삶 동안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았는데도 언제나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평가되어 끼리끼리 몰려다니며 고급정보를 독점하고, 자신들에 유리한 이득을 챙겨, 다른 사람들이 당연히 가져야 할 과실까지도 챙길 수 있기 때문에 학벌이 점점 더 심화되는 현상도 살아질 것이다.
그리고 모든 대학이 특성 있는 대학으로 평준화가 된다면, 일류 대학생이건 삼류 대학생이건 모두 공부하고는 담을 쌓아 「도토리 같은 대학생들」을 무수히 배출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노력을 하지 않고도 자리를 보전할 수 있는 어부지리를 얻을 수 있었던 학벌이 없어진다면, 직장인 모두가 끊임없는 노력을 기우려 우리나라가 세계적 경쟁력을 갖도록 국가경쟁력을 쉽게 높여 놓을 것이며, 또 굳건하게 지켜갈 것이다.
한편으로 대학주변에서 성장하는 벤처기업들에 의해 지역발전도 도모되어 수도권집중에 따른 부동산거품도 일지 않게 만들 것이다.
결론적인 글을 써놓고 보니 너무 짧다. 내 주특기는 미주알고주알 쓰며 글을 늘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력발휘를 할 수밖에….
고등학교가 일류대학을 가기 위한 입시준비교로 전락하다보니, 얼마나 많은 학생을 일류대학에 보내느냐가 가장 큰 목표가 되어 「내신성적」을 올리기 위해 아주 쉬운 문제를 출제하거나 미리 문제를 알려주고 시험을 보는 웃지 못할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또 하지 않은 봉사활동도 힘있는 부모가 시간을 채워온다.
정직만을 가르쳐도 삐뚜로 나가기가 쉬운데 어찌 거짓을 가르친다는 것인지 도대체 모르겠다.
한편으로 각자의 흥미와 능력에 따라 학과목마다 학습능력에 차이가 나게 되어 있으므로 당연히 과목별로 수준을 달리하여 이동식 수업을 시킴이 바람직하겠다. 그러나 현재 고등학교는 전과목 성적에 따라 일류, 이류, 삼류대학 준비반으로 편성을 하려다 보니, 학생과 학부모의 반발이 뒤따라 선진국에서는 하고 있고 또 우리도 필히 하여야 할 능력별 수업에 따른 학습효과를 높이지 못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잘못된 교육현실로 다수의 학생보다는 소수의 학생에 맞춘 수업이 진행될 수밖에 없어 대다수의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잠을 자거나 딴 짓을 하게 되는 것이며, 맞춤교육인 개인교습이나 학원과외로 학생들을 내몰게 되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사교육비에 가정경제가 피폐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교육에서의 치열한 경쟁은 중등교육에서가 아니라 전문지식을 배우는 대학교육에서 있어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 간과한 것 같다. 즉 중등교육은 일반사회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소양을 배우는 과정일 뿐이며 전문인력은 대학에서 길러내는 것이다.
따라서 대학입시에서 변별력을 높인다고 틀리기 쉽게 비비꼰 문제를 푸는 연습을 많이 한 사람이 일류대학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입시교육이 목표가 되어서는 아니 되고, 단지 기본원리를 충분히 이해하도록 하는데 중등교육의 목표를 두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중등교육에서는 '예, 그렇군요'라면서 무조건 잘 외우는 우등생만을 기르기보다는 '아니요, 이럴 수도 있잖아요'라며 부정에서 긍정을 이끌어 내느라 굼뜨게 원리를 찾아내고, 또 엉뚱한 생각도 하는 창의적인 학생들도 길러야 할 것이다.
이러기 위해서는 '예, 아니요'로 답하는 입시만을 위한 되풀이교육에서 벗어나 원리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여유와, '내가 누구인가'도 고민하는 올바른 사춘기를 거치도록 시간을 주어 훌륭한 시민으로 성장시켜야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꿈을 키우는 사춘기」를 올바로 지나게 하여, 크고도 뜻깊은 꿈을 가져 어떠한 고난도 이겨내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고, 또 사회에 말없이 봉사하는 참다운 시민을 길러내야 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치열한 입시공부에 진이 빠진 일류대 학생들은 자만심에 이제 공부는 끝이라며 신나게 놀고, 그리고 이 삼류 대학생들은 공부는 안하고서 취업에 필요하다고 교수를 압박하여(대학의 인지도도 낮은데 학점까지 나쁘면 취직이 아니 된다고) A, B학점을 받으려고만 한다면 어찌하나.
실제로 서울대학교에서는 실력이 모자라는 학생에 대한 학사경고와 제적에 이르는 벌칙이 과다하다하여 학생들이 데모를 벌렸고, 대학은 이들의 항의에 굴복하여 이 학칙을 완화시키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누구는 자만심에, 어느 누구는 열등감에 공부를 하지 않다 보니 국내에서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은 외국의 대학졸업생들에 비해 그 수준이 매우 낮고, 또 이들을 받아들인 기업들은 상당한 기간동안 막대한 돈을 들여 재교육을 시키지 않으면 실무에 투입할 수 없는 현상마저 벌어져 국가적인 낭비가 크며 국가경쟁력은 제자리걸음을 일삼고 있다.
이제 어느 대학을 다니건 혼자뿐만 아니라, 동아리져 토론하며 밤새 공부하여 세계 어느 대학의 학생들에도 뒤지지 않는 실력을 쌓아 놓았거나 놓으려는 대학생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를 알아도 똑바로 알기 위하여 책에 쓰인 이해가 아니 되는 한 줄에 의심을 품고, 이 책 저 책을 뒤져 몇 일만에 만족할 만한 해답을 찾고 희열을 느끼는 대학생들이어야 한다. 학생의 실력은 가르치는 교수의 능력을 뛰어넘기가 어렵다 한다.
그런데 학벌의 작용에 의해 각 대학마다 주도권 싸움에 유리하도록 모교출신으로 교수를 채용하는 비율을 높이다 보니, 서로 봐주기가 앞서 학문에서의 선의의 경쟁은 뒤로 밀리게 된다.
이런 현상이 너무 심하다 보니 필요한 학문적인 비판도 삼가서 엄정한 평가문화가 정착되지 못하고 또 학문연구를 장려할 자극도 없어 창조적인 업적을 쌓을 수 없고, 그리고 남이 한 것을 적당하게 베끼어도 탈이 없어 교수의 실력이 형편 없다한다.
그렇지만 대학이 평준화되어 교수간에 교류가 활발하여 경쟁이 살아 있게 된다면, 어찌 실력 없는 교수가 대학에 남아 있을 것이며, 왜 실력 있는 대학으로 발전하지 못하겠는가?
이렇게만 된다면 경쟁력 있는 교수는 실력을 갖추지 못한 학생에게는 과감하게 F를 주어, 놀고 먹는 학생들을 대학에서 몰아내는 불굴의 교수님들이 될 것이다.
또 학생에만 의존하지 않고 내 연구의 실험장치는 내가 꾸미고, 실험에서의 자잘못과 실험결과를 명쾌하게 해석해 줄 수 있도록 연구실을 떠나지 않을 것이며, 연구비 따라 매년 연구과제를 바꾸지 않고, 한 연구테마에 십 년 이십 년을 매달려 세계최고의 전문가가 되어 교수님 당신을 필요로 하는 곳의 문제들을 모두 말끔히 해결해 주어야 할 것이다.

7. 왠 원서
우리 대학교재를 보면 쓸만한 우리말 대학교재가 없어 영어로 된 책으로 공부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 우리말로 번역하려 하지말고 영어로 된 내용 그 자체로 머리 속에 넣어야 한다는 교수도 많다한다.
그렇지만 읽은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지금까지 고등학교 때까지 배운 내용과 연관을 지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쓰인 용어와 일치시키며 머릿속으로 번역을 마쳐야 한다.
그리고 알고있는 지식에 덧대 새로운 지식으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그 밑바탕에 흐르고 있는 정의, 원리에 어긋나지 않게 꿰뚫어 보아 새로운 지식체계를 만들어 가야 정확한 지식을 얻었다 할 것이다.
이러기 위해서는 같은 책으로 공부하는 미국과 영국의 학생들보다도 두 세배는 더 공부를 하여야 꼭 같은 실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말의 용어를 찾아야 하고 또 해석도 해야하니까. 그런데도 외국어 번역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는 미국과 영국 등의 선진국 학생들이 우리 대학생들보다 공부를 더 열심히 한다고 심문들마다 대서특필이다.
바보같이 왜 번역해서 머릿속에 넣으려 애쓰느냐고 질책하는 참 실력자가 있겠네. 영어 그대로로 머릿속에 넣겠다.
그러니까 국내서 열리는 어느 학술대회에 가더라도 발표내용의 대부분에 영어단어들이 수없이 박혀 국제학술대회에 온 기분이 나게 만들고 만다. 이러다 보니 계속 공부하는 사람도 자기전공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통 알아들을 수가 없는데, 새로운 기술을 찾아보려는 중소기업 사장과 기술자들이 어찌 이런 발표회에 참여할 수 있겠나 의심스럽다.
여러 사람 앞에서 새로운 발견과 논리를 발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눈을 가진 사람들(다른 전공자)과도 의견을 나누자는 것이 학술발표회의 목적일 텐데, 이것을 원천봉쇄하고서 자기들끼리 아는 말로 씨부렁거리면 무슨 발전이 있겠나싶다.
이와 같이 세부의 전공자들끼리만 알아듣는 영어로 된 술어를 써서, 다른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은 큰 문제라 할 것도 없다. 왜냐하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잘못된 번역으로 틀린 지식을 갖고 있는 경우가 너무 흔히 일어나기에 말이다.
영어로 된 책으로 수업을 받는 학생들이 책을 이해하는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 일정부분을 지정하여 사전과 같은 모든 자료를 활용하여 번역을 하도록 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대부분의 학생은 노벨상을 탈만한 놀라운 사실을 써내려 갈 것이다.
배우는 학생만 그러할까?
나는 국책연구소에 있으면서 가부를 분명히 이야기하여야할 핵심부분에서 엉터리로 이야기하며 자기주장을 굽히려 하지 않는 황당한 경험을 접한 적들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의 지식을 영어로 된 자료에서 얻는다.
한편으로 우리 글로 된 책으로 배우는 학생이 시험준비를 위해 만들어 놓은 쪽지에 사실과 너무나 동떨어지게 정리되어 있던 것을 보고 웃음을 짓고 말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이 떠오른다. 만약에 이 쪽지를 여러 사람이 돌려보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공부는 단지 시험을 위해 하는 것으로 시험이 끝나면 모든 것을 곧바로 잊기 때문에 틀린 지식이 남아있을 턱이 없다. 그렇다면 천만 다행이겠다.
정확한 지식을 얻기는 참으로 어렵다. 책에 쓰인 한 줄이 정확히 이해가 아니 되어, 이 책 저 책을 뒤지며 몇 시간을 허비하였던 적이 없지 않았던가.
하물며 개념도 모르는 새로운 학문을 배우는 과목을 영어로 된 책으로 배울 때 그 효과가 얼마나 나겠는가?
우리가 아는 내용이 영어로 적혀있으면 정확히 번역을 할 수가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이 이런 것인지 아니면 저런 것인지 헷갈릴 때 그것을 설명한 영어로 된 글을 정확히 번역해 낼 수가 있겠는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말로 된 충실한 대학교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우리나라 대학의 교수들이 할 일이다.
그러나 게으른 교수들은 좋은 책을 만들어 배우는 학생들이 정확히 이해하도록 하지는 않고, 영어로 된 교재로 가르치는 우리의 현실에서는 우리 대학생들은 좋은 교수를 둔 나라의 학생보다도 더 노력을 하여야 그들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글 전체가 객관성에서 벗어나기 쉬운 어리석음을 범할지 모르더라도 나의 경험을 써보자. 참 바보스럽게도 그 중요한 고등학교 3학년 때에, 집의 책장을 돌아다니는 영어소설을 읽게 되었다. 중학교 때 고등학생도 배우는 제법 상세한 영어문법책을 학원에서 배운 터라 영문법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으나, 고등학교에서 너무 영어공부에 소홀하여 모르는 단어들이 엄청 많아 이를 보충해 보겠다는 욕심으로 책을 들은 것이다. 이 때 모르는 단어는 공책에 적고 그 뜻풀이를 달아, 쉬는 시간에는 꿈쩍도 않고 이것을 외웠다. 대입시가 다가올 정도가 되니까 그 효과가 나타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편으로 물리·화학에는 저학년부터 흥미를 가져 선생님이 추천한 두꺼운 참고서로 따로 더 공부를 하였다.
그런데 대학에 입학하니 몇 가지 색으로 인쇄되고 또 지질도 좋아 국내에서 나온 책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영어로 된 일반화학 책으로 화학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반쪽을 읽는데 한시간이 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읽는 속도가 빨라지고, 연습문제도 잘 풀려갔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요일 모두를 여기에 쏟아 붇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나 나름대로는 충분한 기초가 다져졌다고 생각되는 데도 이렇게 영어로 된 책을 읽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학생들이 못 따라오니 의욕이 많던 그 교수님도 그 다음해부터는 우리 글로 된 책을 채택하게 되었다.
나의 경험으로 볼 때 영어로 된 책을 교재로 택해 공부를 시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기에 영어로 된 책을 교재로 택하는 교수는 어느 나라 사람인지 참으로 의심스럽다.
나의 이런 의견에 대하여 영어로 된 논문을 읽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국제화시대에는 일찍부터 영어로 된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되었듯이 학문의 시작인 기초 돌을 단단히 놓기 위해서는, 좋은 우리말로 된 교재가 있어 이를 통해 잘 이해를 하고, 그리고 이 지식을 바탕으로 하여 영어로 된 문장을 정확히 이해하는 습관을 만들자는 것이다.
스스로 엉터리로 번역해 머릿속에 넣은 지식이 계속하여 잘못된 지식을 재생산하는 것을 왜 모르지 통 이해가 아니 간다.
학생들이 영어로 된 책으로 공부하기가 어려워 번역본을 찾게되는데, 제대로 된 번역본이 없다. 책을 내느라 번역에 참여한 교수도 엉터리로 번역하는데(대학원생들이 번역해서 그렇다고 변명함), 하물며 이 교과내용을 처음으로 접하는 학생들이야 얼마나 많은 잘못된 번역을 할 지 모르지 않는다는 것인가.
일본도 영어로 논문을 내고, 또 영어로 된 논문을 읽어야 하기 때문에 자기전공에 관련된 내용을 영어로 쓰인 책을 읽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대학교재 및 전문서적은 일어로 된 좋은 책들이 많다.
따라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영어논문을 읽기 시작하는 것은 졸업논문을 쓰는 4학년과 대학원생들이다. ( 이런 공부를 잣시까이라함. 여기에는 조수와 조교수가 끼어서 틀린 부분을 고쳐줌)
새롭게 배우는 과목을 영어로 된 책으로 배울 경우와, 대부분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한 후에 영어논문을 읽을 경우, 틀리게 읽을 확률이 어느 경우에 더 높겠습니까.
나는 참 우리나라 교수님들이 원망스럽다!